‘하루에 삼백잔’ 전설의 ‘앵무杯’, 億劫의 세월을 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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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삼백잔’ 전설의 ‘앵무杯’, 億劫의 세월을 채우다
  • 和白新聞(화백신문)
  • 승인 2020.01.02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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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경주 황남대총 남분서 출토
발굴시 패각류 손상 심해 조사 안 해
최근 분석결과 앵무술잔으로 밝혀져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앵무배 한쌍. 사진 위는 출토된 상태의 것이고 아래는 원형을 추정한 형태다.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앵무배 한쌍. 사진 위는 출토된 상태의 것이고 아래는 원형을 추정한 형태다.

 

"앵무술잔으로 백년 삼만 육천 날을 하루에 모름지기 삼백 잔은 마시리로다(鸚鵡杯, 百年三萬六千日, 一日須傾三百杯)." 중국 당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는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에 쓰여진 전설의 앵무술잔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경주에서도 발견돼 세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는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의 김종우 학예연구사가 학술지 보존과학 제22집 ‘경주 황남대총 출토 신라 앵무배’를 게재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중국에서도 동진과 서진 시기의 무덤에서 발견된 3점뿐인 귀한 유물인 앵무조개잔(앵무배)이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1쌍이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유물은 중국의 3점 외에 경주에서만 발굴됐고 일본에서는 아예 출토된 적이 없다.
경주 황남대총 출토 신라 앵무배 학술지에 따르면 1973~75년 조사된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금동제 조개 유물을 분석한 결과 앵무조개 금제와 금동제잔 1쌍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부합장무덤이었던 황남대총의 남편 무덤인 남분에서는 은관, 금제조익형관식, 금동제옥충안교, 금·은제의 용기류와 칠기, 유리용기, 금장식고리자루 큰칼 등 약 3만점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됐다. 함께 60여 점의 패각류는 손상이 심해 조사가 진행되지 않다가 최근 들어 조사를 재개했다.
남분에서 출토된 패각류는 백합, 소라, 홍합, 오분자기, 밤고둥, 논우렁이, 다슬기 등이며 이외에도 종이 확인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이중 유일하게 조개 테두리를 금속으로 마감해 제작한 금동제패각장식구편(金銅製貝殼裝飾具片)이 주목받았다. 한쌍으로 발견된 이 조개장식은 그동안 용도불명으로 등록돼 보관해 왔던 것.

조사결과 이 조개장식은 앵무조개과로 확인됐고 금동제와 금제의 한쌍으로 제작된 앵무배인

금동제테두리장식의 갈색 유기물 세부 사진.
금동제테두리장식의 갈색 유기물 세부 사진.

것으로 추정했다. 앵무배는 전체크기가 110㎜ 정도며, 손잡이 길이는 32㎜, 폭은 80㎜ 정도다. 그러나 파손편으로 보아 대략 8.5~9.5㎝로 추정할 수 있고, 남아있는 조개 두께는 0.81~0.93㎝다. 금제 앵무잔의 경우 전체적인 형태를 파악하기 힘든 상태이지만, 앵무조개 특징인 껍데기 내부 격벽은 그대로 남았다. 금동제는 동에 수은 아말감 기법으로 도금했고, 금제는 금과 은 합금으로 금 성분이 약 88%다.
앵무배 제작에 쓰인 앵무조개는 고생대 실루리아기(4억4370만년전~4억1600만년전)에서 중생대 백악기(1억3500만년전~6500만년전)까지 존재했다가 멸종된 암모나이트와 가까운 종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일컬어진다.

조선시대 앵무배.
조선시대 앵무배.

앵무조개로 만든 앵무배와 관련된 자료는 ‘고려사’와 ‘연려신기술’,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문헌에 등장한다. 왕이 종친이나 신하에게 하사하는 귀중한 물품으로 왕이 앵부매의 제작을 직접 지시했다고 했고 앵무배가 제주지방 토산물인 진상품으로 앵무조개의 수급이 쉽지 않아 제주목사 고태필이 백성들의 어려움과 감면을 청하는 내용도 나온다.
김종우 학예사는 “앵무배는 당시 신라의 국제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로 중국과의 무역관계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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