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윤씨(坡平尹氏), 시조(始祖) 윤신달 태사공(太師公) 추향대제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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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坡平尹氏), 시조(始祖) 윤신달 태사공(太師公) 추향대제 봉행
  • 和白新聞(화백신문)
  • 승인 2022.10.2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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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향대제,매년 음력 10월1일 경북 포항시 기계면 봉강재 현지에서 봉행
시조 윤신달 태사공,고려 개국공신으로 국기(國基)다져...어려서 부터 문무 능해
'봉강재',28세손(世孫) 안동부사 광소(光紹) 창건...조선중기 독특한 건축양식
尹 대통령 축하화환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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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음력 10월1일 태사공 추향대제...윤신달 태사공 묘역에서 열린 추향대제 헌관과 문중 원로들

파평윤씨(坡平尹氏) 시조(始祖) 윤신달 태사공(太師公) 추향대제가 25일 오전 10시 경북 포항시 기계면 봉강재(鳳岡齋) 현지에서 후손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됐다.

태사공 강생(降生·탄생)을 맞아 매년 음력 10월1일 열리는 이 행사는 '파평윤씨봉강재대종회' 주관으로 열렸다.올해는 태사공 강생 1130년 째다.

이 날 추향대제에서는 초헌관은 석환[錫環-수원], 아헌관 성길[(成吉)-부산], 종헌관 칠노[(七魯-청도) 순으로 진행됐다.

소정공파(昭靖公派) 35세손인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 때문에 참석치 못하고 축하 화환을 보냈다.

'파평윤씨'는 경기도 파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다. 경기도 파주는 본래 고구려 장수왕 때 '파해평사현'이라 불렸고 신라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인 파평현으로 고쳤다.

조선 태조 때 서원군과 파평현을 병합하여 원평군이라 하였다. 1461년 세조비 '정희왕후'의 관향이라 하여 파주목으로 승격하였고, 1895년 군이 되었다.

그리고 '파평'이란 지명은 현재도 파주시 산하의 파평면 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윤석열 대통령 화환
추향대제에 참석한 문중 원로들이 봉강재 봉누암에서  문중회의를 개최했다. 이 날 윤석열 대통령은 축하 화환을 전했다.

경상북도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 소재 '봉강재'는 파평 윤씨의 시조인 태사공 윤신달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1751년에 창건한 재사로서, 조선 중기 건축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는 건축물이다.

평면구성이 독특하며 치목수법이 우수, ㄱ자형 팔작 지붕에 겹처마로 정면 6칸, 측면 4칸의 구조로 되어 있다.

28세손(世孫)인 윤광소(尹光紹)가 안동부사로 있을 때 헌금 50량과 목재 15칸분을 헌납하여 창건하였다. 그후 1762년 경상감사로 있던 26세손 윤동도(尹東度)에 의하여 수축(修築)되었다.

이어 1763년 경상감사 윤광안(尹光顔)과 안동부사 윤성대(尹聲大)가 위토(位土)를 늘리고 재사를 중수하였다.

1987년 12월 29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풍수가들은 봉강재 인근은 봉황이 내려 앉은 지형으로 '명당'으로 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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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 지형인 묘역...윤신달 태사공 묘역에서 바라본 봉강재 전경.후손들이 멀리서 추향대제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한편,파평 윤씨의 시조는 윤신달(尹莘達) 태사공은 어려서 부터 학문과 무예사 남달리 뛰어난 인물로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올랐다. 이후 고려 국기(國基)를 다지는 일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윤신달의 5세손인 '윤관' 장군은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았다. 그는 고려 선종 때 합문지후와 좌사낭중을 지내고, 여진정벌에 원수가 되어 17만 대군을 이끌고 출전, 함주와 영주 등 9지구에 성을 쌓아 침범하는 여진족을 평정하였다.

그 공으로 벼슬이 수태보 문하시중 판병부사 상주국 감수국사에 이르렀고, 7형제를 낳아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 그래서 파평윤씨에서는 윤관을 '중시조'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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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가 넘치는 소나무...경주인근 산들이  소나무재선충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봉강재 일대 소나무들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고 있다. 봉강재 담벽사이로 수령 300년 정도인 소나무 꼿꼿하게 가을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윤관의 아들 7형제는 다시 아랫대로 내려가면서 수십 파로 분파되었다.

윤관의 장남 윤언인의 손자 윤위는 남원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남원백에 봉해졌다. 그 이후 후손들을 남원 윤씨라고 불렀다. 윤위의 손자 윤돈 또한 함안군에서 난을 진압하여 함안백으로 봉해졌다.

윤관의 5남 윤언식의 후손들은 윤언식의 증손자 윤은형이 덕산군에 봉해짐에 따라 덕산군파로 불려지고 있다.

이외 나머지 파평 윤씨의 분파인 문정공파(文定公派), 신녕군파(新寧君派), 대언공파(代言公派), 봉록군파(奉祿君派), 판서공파(判書公派), 야성군파(野城君派), 전의공파(典儀公派), 소정공파(昭靖公派), 원평군파(原平君派), 소도공파(昭度公派), 판도공파(版圖公派), 소부공파(少府公派), 태위공파(太尉公派) 등은 6남 윤언이의 후손들이다.

이들 가운데서 후손인 판도공파(版圖公派)와 소정공파(昭靖公派)에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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