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황남대총, 무덤의 주인공 논쟁 20년...부부(夫婦)? - 부자(父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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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황남대총, 무덤의 주인공 논쟁 20년...부부(夫婦)? - 부자(父子)?
  • 和白新聞(화백신문)
  • 승인 2021.07.1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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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황남대총 남분 -북분의 표형분...1500년 전 마립간(王) 릉
1975년 박정희 정부 때 발굴 완료...금관 등 수만점 유물 쏟아져
발굴 후 고분 주인공으로 '부부묘' 규정...출토 유물 '부인대' 명 은제 허리띠가 시발
이주헌 "부부가 아닌 부자지간 묘다"..."남분 눌지,북분 자비"
김용성 "귀고리,금관,붉은 장식구 등 출토 유물은 여성적이다"
지난 1975년 발굴된 황남대총. 이 거대한 무덤은 당시 신라 정권의 정치-사회 등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며, 신라 김씨 왕조의 상징적 의미도 갖고 있다.
지난 1975년 발굴된 황남대총. 이 거대한 무덤은 당시 신라 정권의 정치-사회 등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며, 신라 김씨 왕조의 상징적 의미도 갖고 있다.또 표형분(飄形墳-두 개의 봉분이 표주박처럼 서로 이어 붙어 있는 무덤) 구조인데,고신라에만 유행한 독특한 묘제양식(墓制樣式)이다.

경주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신라 대릉원 내 황남대총((皇南大塚).

이 큰 무덤의 주인공을 두고 학계 논쟁이 수십년째 공전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고고학계 내부의 건전한 ‘충돌’일 지, 또는 기존 학설을 번복하기 어려운 ‘자존심’일 지, 둘의 중 하나 일 것이다.

쟁점은 지난 1975년 발굴 이후 학계 일반적으로  '황남대총' 무덤의 주인공으로 '부부묘(夫婦墓)'로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이 무덤이  '부자(父子)'으로  제기되면서 학계 핫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황남대총 북분의 주인공 '성별' 논란을 일으킨 것은   출토 유물때문이다. 그 중심에 있는  부인대(夫人帶) 名이 새겨진 은제 허리띠.
황남대총 북분의 주인공 '성별' 논란을 일으킨 것은 출토 유물때문이다. 그 중심에 있는 부인대(夫人帶) 名이 새겨진 은제 허리띠.

이 논쟁의 중심에 있는 고분은 ‘북분(北墳)’이다.

이 무덤에 대한 양측 규명 논리는 '묘제양식(墓制樣式)'과 '출토유물' 로 해석하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먼저,'부부묘' 로 주장하는  중심 인물은 한빛문화재연구원 김용성 박사다.

그는 “‘북분’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여성’을 추정하는 ‘부인대(夫人帶)’라는 장식물이 피장자의 성격을 규명하는 결정적 증거다”고 밝혔다. 그리고 “출토 유물에서 귀걸이,붉은 장신구,소도(小刀) 등은 '여성적'이어서, '남분' 주인공인 '눌지 마립간(麻立干)' 릉(陵)으로 바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분과 관련,김용성 박사는 '피장자가 대도(大刀)를 착장하지 않은 것', '남분의 세환식(細鐶式- 귓불에 꽂는 고리가 가는 귀고리) 장신구와는  태환식(太鐶植-고리가 굵고 큰 귀고리)과 관수하식이 많은 것', '부장품에 방추차(紡錘車- 실을 뽑을 때 사용하는 도구)가 포함되어 있는 것' 등을 통해 무덤의 주인공은 '여성'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북분과 관련,김용성 박사는 '피장자가 대도(大刀)를 착장하지 않은 것', '남분의 세환식(細鐶式- 귓불에 꽂는 고리가 가는 귀고리) 장신구와는 태환식(太鐶植-고리가 굵고 큰 귀고리)과 관수하식이 많은 것', '부장품에 방추차(紡錘車- 실을 뽑을 때 사용하는 도구)가 포함되어 있는 것' 등을 통해 무덤의 주인공은 '여성'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마립간'(王)은 신라 제19대 눌지(訥祗)~22대 지증(智證) 등 4대 임금을 칭한다.

'여성묘' 주장에 대해  강하게 번복하는 이가 이주헌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서해문화과장이다.

기존의 학설을 부정하는 이 과장의  새로운 학설은 국립경주박물관이 최근 발행한 단행본 ‘마립간과 적석목곽분’에서 제기돼 주목을 받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이 무덤의 주인공이 기존 학계가 주장하는 ‘부부묘(夫婦墓)’가 아닌 부자(父子)지간이다”는 것이다.

기존의 주장과  관련, 이 과장은 " ‘부인대(夫人帶)’ 장식구는 수 만 점의 출토유물 중에 하나일 뿐,피장자를 '특정'할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없다“ 고 반박했다. 

황남대총 피장자의 성격 규명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황남대총은 마립간 시기에 ‘직계존속’이 연속적으로 권력이 승계된 가계(家系)에 의해서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신라 역사 속에서 이에 부합되는 인물은 ‘눌지 마립간’과 ‘자비 마립간’,그리고 ‘소지 마립간’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 했다.

따라서 남분(눌지의 묘)은 아들 자비가 조성했고,북분은 자비의 아들 소지가 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황남대총  피장자 관련,이주헌 박사는 “부자(父子) 상속으로 직계 3대에 이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과 표형분의 형태의 고총고군으로 축조된 '황남대총'을 서로 관련지어 본다면, 결국 ‘남분’은 눌지의 대를 이은 ‘자비 마립간’에 의해서 조성된 ‘눌지 마립간’ 릉(陵)이고, ‘북분’은 ‘자비’의 권력을 승계한 ‘소지 마립간’에 의해 조형된 ‘자비 마립간’ 릉(陵)으로 해석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 박사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실장,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소장,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기획과장 등을 거쳤다.
황남대총 피장자 관련,이주헌 과장은 “부자(父子) 상속으로 직계 3대에 이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과 표형분의 형태의 고총고군으로 축조된 '황남대총'을 서로 관련지어 본다면, 결국 ‘남분’은 눌지의 대를 이은 ‘자비 마립간’에 의해서 조성된 ‘눌지 마립간’ 릉(陵)이고, ‘북분’은 ‘자비’의 권력을 승계한 ‘소지 마립간’에 의해 조형된 ‘자비 마립간’ 릉(陵)으로 해석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 박사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실장,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소장,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기획과장 등을 거쳤다.

그의 주장에 대한 쉬운 설명을 하자면,아버지가 죽으면 그 아들이 묘를 건립한다는 것.

여기에 이주헌 과장이 덧붙인 주장이다.

“피장자의 논쟁 발단은 황남대총의 발굴조사에서 60대 남성의 인골편(人骨片)이 확인된 ‘남분’과 달리 ‘북분’에서는 주인공의 생물학적 성(性)을 판단할 수 있는 ‘인골편’이 홖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그는 “ ‘북분’을 ‘여성’의 분묘로 보아야 할 '결정적'인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일제강점기 신라의 ‘표형분’을 부부묘로 인식한 일제식민지 시기와 광복 후 이를 '계승'한 고고학계의 그림자에 의해 황남대총의 성격을 섣불리 규정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라며 학계 과거사에 대한 비판도 했다.

당시 '적석목곽분' 조영방식에 대해 그는  “선축된 남분에서 후축된 북분이 덧붙여져 ‘표형분’을 이루게 된 근본적인 이유와 신라사에서 황남대총이 차지하는 의미를 정치 사회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함으로써 당시 신라인이 바라보고 느꼈던 황남대총의 시대사적 의미를 재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고 했다.이를 통해 학계 신구(新舊)의 견해 차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어쨌든, 양 측의 주장에 공통적인 사항은 남분의 주인공이 '눌지 마립간'임은 확인됐다. 그렇지만  '북분'의 주인공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나오면서  학자간의 관점이 어떻게 제시될 지 궁금꺼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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