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길이 막혀 몸부림 쳐도 붓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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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길이 막혀 몸부림 쳐도 붓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 和白新聞(화백신문)
  • 승인 2020.02.05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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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만년-문인화의 대가 우연(于淵) 한종환
문인화는 ‘학문’과 ‘덕’을 갖춘 예술
사군자 대가, 천석 박근술의 수제자
아직 ‘일품’ 이루지 못해서 두려워
내가 느낀 세상 그린 것만으로 만족
우연(于淵) 한종환
우연(于淵) 한종환

화선지에 글씨나 그림을 그릴 때 필수적인 도구는 ‘붓’(筆)이다.
이 붓의 재료는 대나무와 말총이다. 수천 년 전 중국 학자들이, 또한 우리나라 학자들 역시 하루도 이 붓을 손에서 놓을 적이 없어 동양권을 대표하는 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은 당시의 ‘역사’와 풍류(風流)를 이 붓으로  서화(書畵)를 남겼다.
또, 붓의 힘은 붓끝에서 결론을 낸 ‘서화’에 ‘낙관’을 찍을 때 부터다 . 이는  다시는 번복할 수 없는 결과물이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예술계 정설이다.
소위 ‘경지’에 도달했다. 또는 ‘득도’했다는 평가나 관점은 후학이나 지인들이 대가(大家)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다. 한 분야에서 최소한 50년 이상 똑같은 일에 매진했고 열정을 쏟았다면 이런 평가와 존경을 받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구순을 바라보면서 평생 붓과의 씨름, 고민하면서도 “부족함이 있다”는 원로 화가가 있다.

富貴   45cm X 70cm
富貴 45cm X 70cm

 

그는 문인화(文人畵)의 대가  우연(于淵) 한종환(韓鍾煥) 화백이다.
누가 보더라도 그리고 누굴 만나더라도 항상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 예(禮)를 중시하는 노 화가. 황혼의 모습에서 내 품는 인향(人香)은  흰 구름처럼 평화롭게만 보인다. 
그를  ‘대가’로 칭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렇다. 특히, 우리나라 문인화 유래 그리고 근대와 현대를 이어주는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의 위대함이다.
우연 스승은 천석(千石) 박근술이고 그 문하에서 ‘먹’을 갈았다. 천석은 사군자(四君子)의 최고 대가이면서 석재 서병오의 제자다.
 여기에서 우리나라 문인화의 계보가 나오는데 중심지가 대구이며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1862~1935))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우연을 통해 확인됐다.
 뿌리는 석재→죽농 서동균→천석→우연으로 그 맥이 이어진다.
우연이 ‘석재’를 언급했다.
“조선시대 말 당시 세도가였던 흥선 대원군(1821~1898)이 대구를 방문했다. 앞서 석재의 그림이나 글씨,거문고 등의 솜씨가 당시 한양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했다. 
그래서 대구에 온 흥선이 석재를 불러 그 자리에서 글씨를 써보라 했다. 그런데, 흥선은 그의 글을 보고 칭찬 대신 더욱 연마해야 한다며 법첩(法帖)을 하사했고, 이후 석재의 기량은 급성장했다.”
일취월장한 석재는  서화는 물론 음악 등 8가지가 능통해 ‘팔능거사(八能居士)’라 불렸고, 이 유명세는 호남지역까지 뻗쳐 그의 집에는 연일 문화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는 것.
특히,당시 일제강점기에서도 영남지역 양반들은  석재 ‘문하생’이 되기위해 줄을 섰다 한다.  경북지역 대표 명문가인 양동 이씨, 경주 최씨 등 자제들이 그의 문하에서 학문 등을 배웠다.
우연 또한 50여 년 전 대구에서 석재의 제자였던 ‘천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 당시 동문수학은 우정 이창문,야정 서근섭,학천 김시형,성오 채희규, 석경 이원동 등이다.
우연이 밝힌 문인화 설명이다.  “중국 명나라 동기창으로 부터 시작되어 청대까지 이어졌고, ‘학문’과 ‘덕’을 갖춘 사람들이 행한 예술이며, 우리나라의 문인화 사용은 1990년대부터 공식화됐다” 고 했다.
‘사군자’에 대한 우연의 언급이다.

山情    70cm X 23cm
山情 70cm X 23cm

“사군자는 3천 년 전 중국에서 선정(善政)을 편 평원군,맹상군,신릉군,충신군 등 4명 제왕을 기리기 위해 명나라 때 진계유가 ‘자연’에서 찾은 것이 매난국죽(梅蘭菊竹)이고,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 했다.
그의 사군자도 일품이다. 또한 작품 특징은 전통문인화를 바탕으로 한 현대적인 조형감각이 베여 있는 신문인화까지 다양하다.
특히, 향토색 짙은 경주의 문물을 작품으로 소화하여 신선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연은 자신의 평가는 냉정할 정도다.
“평생을 끊임없이 해 왔지만 이루지 못했다. 일품(逸品)을 이루지 못해 두렵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가 느끼는 세계를 그린 것에 대해서는 만족을 한다”
노 화가의 50여 년 세월은 길지 않았다. 아직 붓이 그를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다.
그의 대표작은 ‘제목-삼릉소견(가로 14m,세로 2m)’으로 소나무 작품 중 백미로 꼽힌다.
정태수 월간 서예문화 편집주간은 “우연의 문인화는 가슴에서 태어난 ‘먹’과 ‘선’으로 표현되는 절제되고 함축된 무의식의 ‘조형서계’이다. 가슴 속에서 다듬지 않고 나온 꾸임없는 세계이며, 온몸과 가슴으로 쓴 ‘조형 언어’다” 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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