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만에 햇빛 본 신라시대 '人物'은?... 고분 속 피장자 '신발' 신은 체 발견은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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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만에 햇빛 본 신라시대 '人物'은?... 고분 속 피장자 '신발' 신은 체 발견은 '최초'
  • 윤효중 기자
  • 승인 2020.09.0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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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문화재청 신라왕경사업추진단, 경주시 황남동 120-2호 고분군 조사결과...코로나,온라인 설명회 공개
'피장자', 머리부터 발치까지 전신 착장 ...'금동관' 등 6세기 전반 제작된 장신구 일체
관과 귀걸이, 가슴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신발 등 일괄 출토... 1973년∼1975년 황남대총 이후 '처음'
금동관, 관테 장식용 구멍 뚫려있는 것도 첫 사례
'금동신발'을 신은 체 발견된 피장자의 신분은 왕(王)으로 추정된다 / 문화재청
'금동신발'을 신은 체 발견된 피장자의 신분은 왕족 여성으로 추정된다 / 문화재청

경주시 황남동 120-2호 고분군에서  6세기 신라시대 '금동관'과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은허리띠, 은팔찌, 구슬팔찌, 은반지 등이 다양한 유물이 무더기로 출토돼  학계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화재청 신라왕경발굴조사단은 3일 이 고분군에 대한 정밀발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에 따르면  확인한 것은 '피장자'가 머리부터 발치까지 전신에 착장하였던 '금동관' 등 6세기 전반에 제작된 장신구 일체이다. 피장자는 금동으로 만든 관()을 머리 부분에 착장하였고, 굵은고리귀걸이(太環耳飾, 태환이식)를 양쪽에 하고 있으며, '금동신발'을 신고 있다.

경주 지역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 적석목곽묘)에서 피장자가 '신발'을 착장한 사례가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그리고 관과 귀걸이, 가슴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신발이 일괄로 출토된 것은 19731975년 황남대총 이후 처음이다.이렇게 피장자의 장신구를 착장상태 그대로 전체 노출시켜 공개하는 것도 처음이다.

120-2 고분군 피장자 왼손에 낀 은반지 / 문화재청
120-2 고분군 피장자 왼손에 낀 은반지 / 문화재청

금동 달개 일부는 5월에 먼저 노출되었던 피장자의 머리 부분에서는 최종적으로 금동관이 확인되었다. 금동관은 가장 아래에 관테(帶輪, 대륜, 머리에 관을 쓸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든 띠)가 있으며, 그 위에 3단의 나뭇가지모양 세움장식(樹枝形 立飾, 수지형 입식) 3개와 사슴뿔모양 세움장식(鹿角形 立飾, 녹각형 입식) 2개를 덧붙여 세운 형태이다.

관테에는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장식용 구멍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나뭇가지모양 세움장식의 끝 부분에도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다. 금동관의 관테에는 곱은옥(曲玉, 곡옥)과 금구슬로 이루어진 금드리개(金製垂飾, 금제수식)가 양쪽에 달려 있다.

관테와 세움장식 사이에는 , 모양의 무늬가 뚫린 투조판이 있는데, 세움장식의 상단에서도 투조판의 흔적이 일부 확인되었다. 이 투조판이 관모(冠帽)인지, 금동관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였는지는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출토된 경주 지역의 금동관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

특히,금동관의 관테에 장식용 구멍이 뚫려있는 것은 첫 사례다.  투조판이 관모일 경우에는 경주 지역 돌무지덧널무덤의 피장자가 관과 관모를 동시에 착장한 첫 사례 이며, 투조판이 관을 장식한 용도일 경우에는 현재까지 출토된 사례가 없는 새로운 형태의 관이다.

금동관 아래에서는 금으로 제작한 굵은고리귀걸이 1쌍과 남색 구슬을 4줄로 엮어 만든 가슴걸이(胸飾, 흉식)가 확인되었다. 그 아래에서는 은허리띠와 허리띠의 양 끝부분에서 4점이 묶음을 이룬 은팔찌, 은반지도 확인되었다.

오른팔 팔찌 표면에서는 크기 1내외의 노란색 구슬이 500점 넘게 출토되어 작은 구슬로 이루어진 구슬팔찌를 은팔찌와 함께 끼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은반지는 오른손에서 5, 왼손에서는 1점이 출토되었는데, 왼손 부분을 완전히 노출시키기 않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조사가 이루어지면 왼손 부분에서 은반지가 더 출토될 가능성도 있으며, 천마총의 피장자처럼 각 손가락마다 반지를 꼈을 가능성도 있다.

'금동신발'은 , 모양의 무늬를 번갈아가며 뚫은 앞판과 달리 뒤판은 무늬를 새기지 않은 사각의 방형판으로 마감한 형태였다.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신발의 뒤꿈치까지의 길이가 176인 것으로 보아 피장자의 키는 170내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신라왕경사업추진단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피장자의 성별 등을 포함해 추가로 더 밝힐 수 있는 것이 있는지를 확인할 예정이다.

이 고분 부장칸에서 발견된 철솥 / 문화재청
이 고분 부장칸에서 발견된 철솥 / 문화재청

이 외에도 은허리띠의 드리개 연결부가 삼각 모양인 점, 부장칸에서 출토된 철솥(鐵鼎, 철정)의 좌·우에 고리 자루 모양의 손잡이가 부착된 점 등 기존에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자료가 많아서 추후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 다양한 논의가 더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청 신라왕경사업추진단은 이번에 확인한 장신구 등 다양한 유물을 3일 오후 2시 문화재청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댓글로 제시되는 궁금증에 대해 학예연구사들이 실시간으로 답변하는 온라인 발굴현장 설명회를 개최했다

 한편,문화재청이 경상북도ㆍ경주시(시장 주낙영)와 함께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2018년 5월부터 경주 황남동 120호분을 발굴조사(조사기관: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하고 있다. 이번에 피장자가 착장한 장신구가 대거 발굴된 곳은 황남동 120호분의 봉토를 파괴하고 축조된 120-2호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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